Friday, February 09, 2018

새롭지 않으나 들을 때마다 열받게 하는 말들의 향연

"고은은 돌출적 존재, 무조건 매도는 말아야"

문학과지성사를 설립한 ‘문지 4K’ 중 한 사람인 문학평론가 김병익(80)씨가 8일 이번 파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미투 운동에 동의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존경할 만한 것을 할퀴어 가치가 전도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신의 진의가 왜곡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우리가 존경할 만한 것"? 그걸 누가 판단해서 결정한 것이지? 자기가 고은을 존경하면 그렇게 말하면 그만이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고은)을 할퀴어 내가 갖고 있는 가치가 전도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야지. 정확하지도 않은 "우리"를 앞세워서 고은을 존경할만한 사람을 만들어버리네. 

성추행 사건에서 가해자가 존경받을 만한 사람인지 여부가 중요한 건가? 가해자임이 확정되어 버렸으면 이제 더 이상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게 되는데. 

고은의 시가 존경할만한 것이라는 말인가? 그건 읽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고은의 시가 존경할만한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그 "우리"에서 나는 빼주면 좋겠다. 

Q : 고은 시인의 성추문 파장이 크다.

A : “내가 늙고 보수적인 사람이라 그런지, 뛰어난 예술가들의 업적은 존중하되 그들의 약점이나 실수는 보호하는 사회적 미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없던 일이 생긴 것처럼 새삼스럽게 까발리는 게 과연 좋은 일인가 싶다. 고은 선생은 옛날부터 술좌석에서 시끄럽고 난잡스러웠다. 그건 새로운 얘기도 아니다. 갈수록 세상이 속류화되는 것 같다.”

늙고 보수적인 사람이라지만, 말은 파격적으로 하네. 보수적인 사람이라면 "뛰어난 예술가들의 업적은 존중하되 그 사람의 잘못은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라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고은이 예전부터 그랬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구만. 이건 쉴드를 치겠다는 건지 검사 쪽 증인으로 나서겠다는 건지 모르겠네. 

속류화는 또 뭔가? 석류화를 잘못 말한 거 아냐? 백합에 이어 석류라는 장르가 생기는 것인가?

Q :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된 분이라 사람들의 충격이 큰 것 같다.

A : "예술에서 도덕적 청렴함이 반드시 플러스가 되는 건 아니다. 뛰어난 예술가들은 스스로의 약점, 욕망, 좌절 같은 것 때문에 예술이 오히려 깊어질 수 있다. 잘못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깊게 하고,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사례를 뛰어난 예술가들에게서 많이 본다. 실수나 좌절감, 혹은 주체할 수 없는 욕망 때문에 스스로 성찰하고 깊이 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고, 그런 고통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에서 한 작가의 위대성이 드러난다. 미투 운동과 관련해 가령 출판사 사장이 책 내준다고 꾀어 여성 문인을 어떻게 했다면 그건 문화권력을 이용한 거니까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예술가의 광기와 열망, 좌절감이나 감정의 분류(奔流)에 의해 발생한 어떤 사태에 대해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그의 문학까지 비난한다든가 사회적으로 공개 힐난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고은이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된 건 확인된 사실인가?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는지는 비밀로 취급하고 안 알려준다던데. 고은이 후보로 올라갔다고 확인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근거 없이 일단 뱉어보고 시작하는 인터뷰.

Q : 예술가가 면책의 존재는 아니다.

A : "과거 프랑스의 극작가 장 주네(1910~ 86)는 남색질, 도둑질, 강간을 저질렀다고 고백했다. 그런데도 사르트르는 장 주네를 세인트 주네라고 부르며 그에 대한 700쪽 분량의 연구서를 썼다. 고은 시인이 잘했다는 게 아니다. 예술과 도덕은 같이 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로 배반하는 경우가 더 많다. 도덕적 비판이 한 사람의 예술이나 업적을 할퀴어 찢어버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예술과 도덕은 같이 가는 게 아니다? 예술과 법도 같이 가는 게 아닌지 궁금하네. 특히 성추행에 대해서도 형법상 예술가 면책 조항이 있는지 알고 싶다. 

거듭 얘기하지만 고은의 예술적 업적이란 게 정말 그렇게 대단한가? 업적이란 걸 보여주고 나서 얘기하자. 

Q : 시인의 문학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A : "그는 젊어서 여러 차례 자살을 기도할 만큼 세계의 허망함을 깊이 느꼈고, 1970년대 중반 유신 시절 반정부 투쟁을 지휘했다. 그런 모습이 시인의 본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우회적으로 시인의 내면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영미 말대로 수돗물 틀면 쏟아지듯 숱한 시를 썼는데, 단박에 깨닫는 불교의 돈오(頓悟)적 일갈이 섬광처럼 번득이는 시도 많다. 타작도 많지만 시에 대한 열정, 그것을 드러내는 형식의 분방함을 높이 평가한다. 얌전한 한국 시단에서 돌출적인 존재이고 시의 역사에서 존중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돌출적인 존재" - 바짓단에서 뭐가 막 튀어나오고 그런다는 말은 아니겠지? 

Q : 그렇더라도 일탈을 눈감아야 한다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

A : "내 의견에 동의해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멈추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너무 벗겨서 드러내기보다는 알면서도 모른 척 지나가는 그런 관대함이랄까, 그런 것도 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너무 시시콜콜 다 드러내고 폭로하고 비난하면 세상이 좀 살벌해지고 여유가 없어지는 것 같다. 우리가 이렇게 일거수일투족 조심하다 보면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싶다.”

"일탈"도 웃기는 소리지만, 알면서도 모른 척 지나가래. 그게 관대함이야? 그럼 피해자들이 받은 상처는 어떻게 할 건데. 그것도 관대하게 모른 척 지나가? 

Q : 페이스북 같은 SNS는 ‘즉결심판’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효과가 즉각적이다. 순기능은 물론 역기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A : "SNS든 인터넷이든 그게 좋다 나쁘다, 를 말하기 전에 그런 문화, 문명으로 가는 걸 피할 수는 없다. 아날로그 시대와 달리 디지털 시대에는 가볍고 다급하게 소문이 나돌고 그것 때문에 영웅과 피해자가 쉽게 뜨고 진다. 이번 일도 아마 몇 주 지나면 슬그머니 없어지고 말지 모른다. 세상이 빨라지고 경쾌해진 만큼 도덕적인 판단이나 심리적인 발언도 그만큼 다급해지고 경솔해질 수 있는데, 나 같은 아날로그 세대는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시대착오적인 할아버지 어떻게 하나? 

Q : 과거에 비해 세상이 달라졌다.

A : "달라져야 하고, 많이 달라졌다. 갈수록 옛날처럼 여성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거고, 그래서 점차 양성평등의 사회로 나아가지 않을까. 그런 방향에 대해 나는 찬성한다. 다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가치까지 마구 할퀴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에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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