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February 07, 2018

장정일 칼럼 - 꽃뱀에게 넘어갔다는 남자들

한국일보 장정일 칼럼 - 꽃뱀에게 넘어갔다는 남자들

2011년 5월 14일 낮 12시, 맨해튼에 있는 최고급 호텔 특실에 투숙했던 쉰네 살의 프랑스 남자가 객실 청소를 하러 들어온 서른두 살의 여청소원 나피사투 디알로를 강제로 덮쳤다. 7~9분 동안의 성폭행이 끝나자 디알로는 호텔 경비원에게 이 일을 알렸고, 뉴욕 경찰은 이튿날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막 유럽으로 이륙하려는 에어 프랑스 기내에서 이 남자를 체포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 총재이자 프랑스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이었다. 이 극적인 사건은 열흘 동안 전 세계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피해자의 진술과 정황은 명백히 강간임을 증명했지만, 칸은 합의된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칸을 옹호하는 프랑스의 유명 인사들은 언론을 통해 ‘청소원을 믿느냐? 경제학자를 믿느냐?’를 양자택일하라면서, 디알로를 꽃뱀으로 몰아 붙였다.
남성들은 유사 이래 어떤 강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강간 부정 논리’를 꾸준히 개발해 왔고, 칸 사건은 강간 부정 논리의 온갖 요소를 집대성해 보여주었다. 칸처럼 유명 인물은 강간범이 될 수 없다는 희극적 변호는,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스키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으면 강간범이 아니라는 강간 부정론자의 억견(臆見)을 아무런 이의 없이 수용한 것이다. 
하나 덧붙여서, 어떤 이들은 스트로스 칸 체제의 IMF에 대한 미국의 통제력이 약해지고 있는 것을 우려한 미국 정부가 칸을 날려버리기 위해 만들어낸 조작극이라는 신통방통한 음모론까지 만들어내기도 했다. 빻은 남자 하나 지키기 위해서 미국 정부의 조작극까지 상상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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