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픽션의 결합. 픽션도 마치 현실처럼(as if) 받아들여주는 척하는 파타피지컬한 태도. 이 디지털의 일반적 특성이 한국처럼 문자문화가 약한 나라에선 as if의 성격을 잃고 픽션=현실이 되어 버리는 거죠.
사실과 추론을 통해 상황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게 아니라, 사실에 픽션을 가미해 그럴듯한 드라마를 구성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도가니를 보세요. '보도'보다는 '영화'잖아요. 그게 더 큰 힘을 발휘해요. 한 마디로 논객의 시대는 지났죠.
나꼼수도 마찬가지에요. 사실에 픽션을 가미한 드라마. 한나라당이라는 악마. 그에 맞서는 의인들. 영웅을 죽인 배신자들, 보복하는 민중들... 결국 승리하는 우리들. 이런 시나리오거든요. 이건 너무 강해서 논리로 이길 수 없어요.
그 가당치도 않은 시나리오 속에서 짐짓 진지한듯 배우 노릇 해주는 건 피곤한 일이죠. 게다가 연기에는 영 재능이 없어서리... 이건 나꼼수만의 일회적 현상이 아닙니다. 미디어론의 관점에서 비슷한 현상들이 계속 등장할 겁니다.
기자보다는 스토리텔러, 논객보다는 애지테이터, 학자보다는 엔터테이너... 가상/현실이 뒤섞인 상태가 우리의 새로운 현실이죠. 이건 역사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에요.
논리적 설득이란 불가능한 게 아니라, 더 정확히 말하면..... 불필요해진 겁니다. 로고스에서 뮈토스로.... 논문에는 감정이 없어요. 드라마엔 눈물이 있죠.
현실이 컴퓨터게임이 되어가겠죠. 진보/보수, 여당/야당... 정의니 뭐니.. 이런 '가치'는 중요하지 않아요. 컴퓨터 게임에서 종족끼리 싸울 때, 내가 이 종족 대신에 저 종족을 택하는 어떤 윤리적 이유가 있나요?
사람들은 환상이 환상이라는 걸 몰라서 잡고 있는 게 아니에요. 그게 깨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잡고 있는 거죠. 몰라서 그러면 설득이 되는데, 알면서 그러면 설득이 안 되죠. 그건 논리가 아니라 욕망의 문제니까.
-진중권 트위터에서 발췌-파타피지컬이란 단어는 처음 들어보는데, 이게 진중권이 그 동안 한국 사회에 대해 갖고 있는 불만을 함축적으로 얘기하는 단어로 보인다.
두번째는 '문자문화가 약한' 한국. 한국이 문자문화가 약한 문화라는 데에 동감한다. 모두들 중요한 기록은 안 남기려 하고, 남의 글을 읽을 때 액면을 읽지 않고 그 위에 숨겨져 있다고 믿는 "의도"를 찾으려 노력하지.
지금 나꼼수의 인기는 나꼼수가 전달하는 내용이 그 자체로 타당해서가 아니고 사람들은 이번 정부를 까고 싶은데 제일 재미있고 그럴싸 하게 까주는 게 나꼼수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다. 만약 나꼼수가 한명숙이나 박원순을 같은 방식으로 같은 레토릭을 이용해 같은 정도의 정확한 사실을 가지고 깐다면 사람들이 열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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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님의 의견은 '그럴싸하게 까주는 거에 열광하는 것 까지만 받아들이고 끝내라' 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파타피지컬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 즉, 주장하는 이나 받아들이는 이 모두 그럴싸하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것임을 알고 서로 진짜인양 행동하면서 웃으라. 다만 웃는거에서 끝나고 진짜 현실처럼 받아들이지 마라. 진짜 현실처럼 받아들이지는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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