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한 가지 이슈로 떠들썩한 와중에, 세상을 크게 바꿔놓을 변화가 하나 도입되었다.
구글 번역의 신경망 기반 번역 메커니즘 도입.
대한민국의 권력의 변화와 그로 인한 사람들의 생활의 변화는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국지적이고 미시적이다. 오히려, 이 시끄러운 와중에 자그마한 노이즈 같이 들리는 구글 번역 메커니즘의 업그레이드는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지구적인 이벤트이며 거시적이다.
카이스트의 김대식 교수가 말한 2040년경의 강한 인공지능의 등장은 보수적인 예측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은 2030년이라든지 그 이전에도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것은 비전문가로서의 근거없는 추측이긴 하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 보면 그저 단견만은 아니지 않을까.
인류의 역사를 거시적으로 보면, 인간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은 것은 모두 패러다임의 변화 수준까지 올라간 기술의 발전이었다. 언어의 발명, 농업 혁명, 과학 혁명, 그리고 이제는 인공지능과 로봇. 유발 하라리가 지적한 대로, 그리고 우리가 역사에서 누누히 배우는 대로, 인간의 역사는 인류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는 적이 많지 않았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류의 의도"라는 것은 없으며, 세상을 바꾸어놓은 발명과 발견을 한 몇몇 개인들의 의도는 있었을 수 있으나, 세상은 그들의 의도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바뀌어가지 않았다.
농업 혁명은 사회 전체적으로는 식량 생산의 효율성을 높여주었으나 농경 시대의 인간들의 삶을 풍요롭거나 여유롭게 하지 못했다. 농업인들은 수렵채집인에 비해 더 많은 일을 해야했고 그 대가로 더 적은 식량을 공급받았다.
과학혁명은 농업혁명에 비할 바 없이 엄청난 생산성의 향상을 불러일으켰으나 과학혁명-산업혁명 이후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이전의 사람들에 비해 특별히 더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최초에 씨를 뿌려서 경작을 하는 데에 성공한 농업의 시조나,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을 가능케 했던 과학자들과 발명가들은 인류가 빈부격차가 더 심해지고 노동강도가 더 높아지는 세상에 사는 것을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좀더 편하게 윤택하게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사는 삶을 모두들 살기 바랬을 것이라고 추측되지만, 결과는 그러하지 못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몇몇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이제는 자기들의 연구가 인간들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지는 않아 보인다. 그들은 자기들이 연구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연구할 것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연구를 지속하고 있고, 그 연구의 결과물로 자신들의 큰 돈을 벌게 되면 인공지능과 로봇이 가져올 파멸적인 인류의 미래에서 자기들만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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