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제주에서 보내고 있다. 오늘은 저지와 한림 쪽을 돌아다녔는데, 이동하던 중에 초등학교를 지나갔는데 그 학교의 놀이터를 본 아이가 거기서 놀고 싶다고 해서 차를 멈췄다. 놀랍도록 잘 관리된 잔디밭에는 희한할 정도로 변색/탈색이 거의 되지 않은 미끄럼틀과 몇 가지 놀이기구들이 있었다.
학교에는 우리 말고도 아이를 놀리려고(놀게 하려고) 학교에 온 부모들이 몇명 있었다. 아이는 이 기구 저 기구를 가지고 놀아보다가 조례대 위에 아이들 여러 명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그 쪽으로 달려갔다. 아이는 원래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엄마가 시켜서 그 쪽으로 간 것이긴 하지만 거리낌 없이 달려가길래 약간 놀랐다.
조례대 위의 아이들은 그 동네에 사는 아이들 같았는데, 자기들끼리 한 명의 아이를 교장 선생님으로 추대하고 롤플레잉을 하고 있었다. 어디서 났는지 솔방울도 많이 모아서 조례대 위에 쌓아놓았다가 한꺼번에 운동장에 던지는 놀이도 했다.
이런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도 이 동네나 제주도의 다른 한적한 동네로 와서 과학이나 메이커(Maker) 운동을 가르치는 계약직 교사로서 살아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부에서 공학을 전공했으니, 초중교에서 과학이나 공작(메이커라고 굳이 부르고 싶다)을 가르치는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싶다. 의미는? 메이킹이라는 게 미래사회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의미있는 작업 중의 하나라는 생각인데,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메이커로 키우는 건 의미있는 일이다. 또 한편으로는, 과학이나 수학을 공부할 유인을 갖지 못하는 아이들한테 공작 활동을 통해 과학/수학에 대한 흥미를 유발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있다.
예전에는 가르치는 일을 제일 하기 싫었는데, 오늘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어서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는 정말 모르는 일이구나 싶었다. 근육을 키우면 정치적으로 보수주의자가 된다는 이론도 있으니, 생각은 외부환경 내지 신체의 물리적 변화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것도 매우 개연성 있는 일이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았고, 잔디가 너무 푹신했고, 아이들이 너무 발랄했고, 아이가 신나게 뛰어놀았기 때문에 내 생각도 바뀐 게 아닐까.